<카드회사의 지점장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의 지휘·감독을 받는 8명의 여직원을 상대로 일정 기간 동안 14회에 걸쳐 반복적으로 성희롱 행위를 한 사안>
ㅇ분쟁의 개요
-피고(회사)는 2003. 9. 5. 원고(가해자)가 동부지점 내 여직원들을 성희롱하고 조직력을 저해하였다는 등의 이유로 징계해고를 하였다.
-징계해고의 정당성에 대하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을 거친 후 원고가 중앙노동위원회에 대하여 원고가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ㅇ 의의
직장내 성희롱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주는 판례이다.
ㅇ 직장내 성희롱의 개념
" 구 남녀고용평등법(2005. 5. 31. 법률 제756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조 제2항에서 규정한 ‘직장 내 성희롱’이라 함은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근로자에게 성적인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그 밖의 요구 등에 대한 불응을 이유로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것을 말하고,"
ㅇ 성희롱의 기준
그 전제요건인 ‘성적인 언동 등’이란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나 남성 또는 여성의 신체적 특징과 관련된 육체적, 언어적, 시각적 행위로서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행위를 의미하며,
성희롱의 기준은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객관적으로'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한다. 성적 가해의 논의에 피해자중심주의가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규범학의 논의에 오로지 일방 당사자의 주관에 전적인 판단을 맡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이를 전적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성희롱이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굴욕감', '혐오감'과 같은 정신적 피해이기 때문에 주관적 판단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례는 주관적 사항을 객관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위와 같은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5두6461판결에서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겠다. 다만 그 객관의 교정은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인에 의한다.
"원고의 위와 같은 행동이 비록 여직원들로 하여금 성적인 수치심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일부 여직원의 경우 격려의 의미로 받아들일 정도로 그 정도가 중하다고는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객관적 시각에 의한 교정이 피해자에게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니다. 이 사안의 원심에서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은 다른 여직원의 주관을 기준으로 성희롱에 대한 판단을 흐렸다. 그러나 달리 느낀 여직원이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면 여전히 이는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다.
ㅇ 성희롱의 의도
"위 규정상의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희롱이 문제되었을 때 흔히 '나는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다' '장난이었다' 친해서 한 말이다' 등의 변명이 쉽게 뒤따른다. 사실 범죄학의 논의에서 과실에 대한 제재는 예외적인 방식이다. 다시 말해 고의는 일반적인 구성요건요소이자 책임요소로 판단된다. 당사자가 범의를 지니지 않았다면 범죄를 구성하지 않기 마련이고, 범죄를 구성하더라도 그 책임을 당사자에게 묻기 어렵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성희롱에 대하여서도 가해자는 자신에게 그러한 동기나 의도가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 전적으로 불합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해 판례는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성적 동기나 의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님을 명시하는 데 의의가 있다. 성희롱의 논의는 일반적인 형사법학에서의 범죄와 형벌 논의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형사법학의 논의가 범죄자의 행위와 결과에 그 초점을 두고 있다면, 성희롱의 논의는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한 사정의 차이가 고려된 것이다.
"원고의 위와 같은 행동이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나 성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지점을 책임지는 관리자로서 나름대로 직원에 대한 애정을 표시하여 직장 내 일체감과 단결을 이끌어낸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점, 위와 같은 원고의 행동이 도저히 수인할 수 없을 정도였다면 6개월이라는 단기간에 참가인의 전국최우수지점이라는 실적을 내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한편 원고의 이 사건 성희롱행위 중 많은 부분이 2003. 7. 11. 전국최우수지점 선정을 축하하는 회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원고가 위와 같은 실적에 지나치게 흥분하고 들뜬 상태에서 술에 취하여 우발적으로 여직원들에게 지나친 행동을 하게 된 것으로 그 경위나 동기에 참작할만한 사정이 있는 점"
성적 동기나 의도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판례의 판단은 원심의 위와 같은 판단에 대한 반박이다. 성적 동기의 요구는 위 원심의 판단처럼 천박한 친근감의 표시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대법원 판례는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해내고 있다.
ㅇ판단요소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 사정을 참작하여 볼 때,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으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행위가 있고, 그로 인하여 행위의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음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성적 동기나 의도를 고려하지 않을 만큼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 판단을 서투르게 하거나 제반 사정을 충분히 살피지 아니할 수는 없는 법이다. 판례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더라도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객관성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도록 유의하고 있다.
ㅇ 사용자책임
한편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 어떠한 성희롱 행위가 고용환경을 악화시킬 정도로 매우 심하거나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경우 사업주가 사용자책임으로서 피해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성희롱 행위자가 징계해고되지 않고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성희롱 피해근로자들의 고용환경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으므로,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아 내린 징계해고처분은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쉽게 징계권을 남용하였다고 보아서는 아니된다.
징계와 해고는 일반적으로 징계권자의 재량권에 속하는 사항이다. 다만 재량이라고 해서 근거없는 임의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규범과 재량권의 본질에 의한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재량권의 일탈과 남용이 있을 수 있다.
판례는 성희롱에 대한 징계해고에 대해서도 징계권의 남용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는 데에 박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성희롱에 대한 징계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징계해고의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 논거로 판례는 사용자책임을 들고 있다. 성희롱이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경우 사업주가 사용자책임을 질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할 책임과 실익이 있는 사용자가 징계라는 수단을 활용하는 것에는 명분과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법을 충분히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은 법문화가 우리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문유석의 '미스 함무라비'에 따르면 성희롱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최초의 판결인 1976년 미국의 윌리엄스 대 색스비 판결에서도, 성차별을 방지하지 못한 사용자에게 법적 책임이 있음을 판결하였다고 한다.
ㅇ 직장내 성희롱의 본질
"한편 객관적으로 상대방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보아 어떠한 성희롱 행위가 고용환경을 악화시킬 정도로 매우 심하거나 또는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경우 사업주가 사용자책임으로서 피해근로자에 대해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성희롱 행위자가 징계해고되지 않고 같은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는 것이 성희롱 피해근로자들의 고용환경을 감내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으므로"
당해 판례는 성희롱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사실 희롱이란 개념은 형사법학에서 충분히 다루지 않는, 다시 말해 범죄라고 칭하기에는 경미한 행위유형이다. 그 내용에 성적 주제가 담겨 있다고 해도 그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성희롱은 매우 가벼운 행동이 된다. 다시 말해 성희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예민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직장 내 성희롱은 단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경미하게 침해하거나 희롱에 의하여 인격권을 가볍게 해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고용환경을 악화'시키는 데에 그 문제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활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행위 유형은 단지 행위 그 자체보다 행위가 일그러뜨리는 당해 공간을 살필 수 밖에 없다.
ㅇ 관행과 습관이라는 변명
원고의 위와 같은 행동은 그동안의 왜곡된 사회적 인습이나 직장문화 등에 의하여 형성된 평소의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원심은 이러한 문장을 사용하였다. 성희롱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관행처럼 해왔던 사람들의 사정을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분명히 할 수 있다. 특히 어른들에 대하여, 그런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낯설 수 있다.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 없다는 명제에 익숙한 법률가라면 기대가능성이 낮은 자에게 동일한 책임을 묻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박이 필요하다.
"직장 내 성희롱이 사회문제화된 후 1999. 2. 8.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성희롱 행위를 금지하고 성희롱 예방교육, 성희롱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을 규정하게 된 이상, 그 이후에 발생한 성희롱은 그동안의 왜곡된 사회적 인습이나 직장문화 등에 의하여 형성된 평소의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특별한 문제의식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이유로 그 행위의 정도를 가볍게 평가할 수 없으며,"
이 판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이 판례는 2008년에 선고된 판례인데, 아무리 늦어도 1992년에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이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이상, '문제인지 몰랐다' '익숙한 관행이다'라는 식의 논법으로 책임을 가벼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ㅇ 성희롱을 방지하여야 할 지위에 있는자에 의한 성희롱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여야 할 지위에 있는 사업주나 사업주를 대신할 지위에 있는 자가 오히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성희롱을 하였다면 그 피해자로서는 성희롱을 거부하거나 외부에 알릴 경우 자신에게 가해질 명시적·묵시적 고용상의 불이익을 두려워하여 성희롱을 감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성희롱은 더욱 엄격하게 취급되어야 한다."
성폭력의 본질은 폭력이다. 다시 말해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 대하여 합리적인 이유 없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에는 우월적 지위가 포함된다. 성희롱의 가해자가 무던히 자신의 성적 의도 없음이나 변명하고 있을 때 피해자는 수많은 사정을 고려하게 된다. 나의 문제 제기가 직장의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아닐지, 가해자의 향후 생활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나의 진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지. 이러한 복잡미묘한 피해자의 심리에 대해서도 판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ㅇ 감상
사실 판례에서 이토록 성인지력이 높은 문장들을 찾아보는 것은 낯선 일이다. 문장 하나 하나에서 성문제와 노동문제에 대한 섬세한 사고를 엿볼 수 있다. 당해 판례는 안대희 대법관이 주심, 김영란 대법관이 재판장이고 이홍훈 대법관이 참여하였다. 주심 주도의 대법원 재판 관행을 고려할 때 속사정이 궁금한 판례 중 하나이다.
물론 피해자인 여성이 특수한 상황과 관계 하에서 느낄 수 있는 고통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성숙도를 반영한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사회 문화적으로 적극적 변화를 끌어내고자 하는 견인책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져있다는 관점에서 미진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오지원 -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와 젠더 판례 심포지엄 발제문 中)
성희롱은 개념과 피해에 관한 풍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위 판례는 완전하지 못할지언정 많은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