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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7 Europe+Russia

문화가 흐르는 카페의 도시, 비엔나 (1) 02.13.

잘츠부르크에서 아직 못 본 곳들을 구경할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세면도구가 없어진 게 찝찝해서 그냥 빠른 속도로 비엔나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날의 페이스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틀간 도미토리 형식으로된 호스텔에서 잤다. 밤늦게 큰 소리를 내며 소란스럽게 들어오던 녀석이 있어서 다음날 이른 시간 차분하게 짐 정리를 하면서 아침형 인간의 개념을 그의 뇌리에 새겨주었다. 그날 하루종일 밖에서 놀고 돌아오니 침대에 올려놓은 세면도구들이 사라졌다. 확인해보니 내 침대를 숙소 측에서 치운 적은 없다고 한다. 샴푸, 폼클렌징 등은 필요해서 가져갈 수 있지만 칫솔, 치약이 없어진 건 아무래도 극성 팬클럽의 소행이 아니면 악의적 공격일 것이다. 증거는 물론 하나도 없지만 내 아래 침대에서 자고 있는 녀석을 보면서, 올 땐 캐리어 하나를 가져왔지만 갈 땐 캐리어 두 개를 가져가는 상상도 해봤다. 다행히 이성의 끈이 나의 양심과 녀석의 캐리어를 지켜주었다. 곤란해하는 담당 직원에게 괜찮다고 하니 미안해하면서도 내 얼굴이 진짜 괜찮아보인다고 한다. 정말 괜찮다. 예뻐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세면도구쯤 없어진 게 여행의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다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2017년 2월 12일을 정유양요로 명명해두는 바이다.

 

기차표는 ㅍㅅㅎ누나와 똑같은 열차를 끊었는데 가격 차이가 세 배 정도 나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 몇 번이고 직원에게 확인했는데 이상이 없었다. 미리 끊었는지 여부에 따라 가격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것을 보면서 멍청비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어서 열차에서 물을 하나 사 마셨는데 마트에서 사는 것과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났다. 미리 사오든지, 열차에서는 물조차 마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

 

비엔나 서역 쪽에 ㅂㄱㅅ형이 숙소를 잡고 있었는데 나는 중앙역에 내렸다. 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역으로 가서 오랜만에 극적인 상봉을 했다. 일단 세면도구를 빌려서 씻고 재정비를 한 후에 다시 한 번 구경을 나가 보기로 했다.

 

 

처음 간 곳은 벨베데레 궁전이다. 벨베데레는 아름다운 전망이라는 뜻의 이탈리아 말인데, 마리아 테레지아가 상궁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벨베데레 궁은 중앙 정원을 중심으로 공원이 먼저 조성된 후에 궁전이 만들어졌다.

 

 

유럽의 궁전 문화와 정원 양식을 대표하는 벨베데레를 구경하기에는 이른 때인지 황량하여 볼 게 없다. 봄이 지나 꽃이 푸른 풀과 어우러질 때 오면 달리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궁전마다 조깅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 궁은 결코 훼손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감상하는 공간이자 대상이라면, 이들에게 궁은 과거를 담고 있는 현재의 공원으로서 시민에게 개방된 공간처럼 보였다. 조금 더 확장된 의미에서의 '개방'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부러웠다.

 

 

 

 

 

 

절대주의 왕정 시대의 궁전들이 으레 그렇듯이, 벨베데레 상궁에도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카 코코슈카, 에곤쉴레 등의 작품들도 많이 있지만,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구스타프 클림트이다.

 

 

클림트의 키스 앞에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보낸다. 한국에서 대학생 때 예술의 전당에서 학생증으로 할인을 받으면서 전시회를 보고 온 기억도 난다. 사진에 있는 것은 그림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스팟으로서 짝퉁이다. 클림트의 다른 그림을 보면 사실적인 스케치에도 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왜 이런 식으로 그렸는지 의아했는데, '정상적인' 회화에서도 클림트의 색채에 대한 감각과 관능미에 대한 이해도는 발군의 것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를 상징과 장식을 통해 표현해내면서 그만의 양식을 창조해낸 클림트를 이해하기에는 난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사실 난 에곤 쉴레가 더 좋았다. 거칠면서도 원초적인 그림 속에서 반항적이고 투박한 순수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벨베데레 궁 안에는 유명한 작품이 많지만,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연모하는 이를 향한 절박하고도 애타는 포옹을 표현한 두 그림이 눈에 띈다. 하나는 벨베데레의 주인공처럼 모셔진 kiss로, 화려한 색채와 질감을 통해 황홀하고 아찔한 절정의 순간에 대한 클림트의 염원이 뚫고 나오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소외된 embrace로, 에곤쉴레의 인생마냥 연인의 나체로 뒤얽힌 포옹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동물적 집착을 그리고 있다. 클림트의 그림이 황금빛으로 자신의 바람을 채색하고 수직과 수평으로 표현하는 것이나 에곤쉴레가 표현한 나체와 구부러진 자세들 모두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반항적 애착을 왜곡하여 표현한 것이지만, 위악에 이르지는 못할지언정 솔직함을 과장하여 표현한 후자가 왠지 반문명좌파의 취향에는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발렌타인데이의 작은 훼방에 대한 궁색한 변이었다. 

 

많은 그림이 있었지만 체력이 이미 소진된 상태에서 아침도 먹지 않고 서두르듯이 일찍 나온 탓에 지쳐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층에는 형 혼자 구경하게 하고 나는 뛰듯이 걸어 돌고 앉아서 쉬었다.

이후로는 자허, 데멜, 첸트랄, 란트만 등 유명한 카페들을 다니면서 한 메뉴씩만 먹어보곤 했다. 이는 따로 쓰려 한다.

데멜로 가는 길에 친절한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기념품 샵에서 물건을 좀 샀다. 나는 기념품에 별로 반응하지 않는 편인데 뮤직박스를 유독 좋아한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게 됐다. 이틀 연속으로 여기 들러서 뮤직박스를 몇 개나 샀다.

 

 

카페 몇 개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시청 앞의 야경을 우연히 보게 됐다.

 

 

작정하고 간 건 아니었는데 아주 좋은 광경이었다. 시청 앞에 설치된 스케이트 장이 서울 시청 앞 스케이트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아마 코스도 더 복잡하고 시청 자체가 고풍스러운 느낌을 간직하고 있기 떄문이겠다.

 

 

이어서 들어갈 순 없었지만 프로이트 집에 들렀다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태권도 도장이 보여서 반가웠다. 안에서 하는 동작은 난생 처음 보는 동작이다.

블로그에 많이 올라오는 집이라고 한다. 실제로 들어가니 한국, 중국인이 많았다.

 

 

 

예약을 안해서 못 먹을 뻔했는데 다행히 20분쯤 기다려서 먹을 수 있었다.

 

립 자체는 작지만 둘이서 나눠 먹기에 양은 많았다.

 

 

 

물론 우리는 더 시켜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