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캔 스피크 (2017)i Can Speak
2017.09.21 개봉
119분, 12세이상관람가
- 감독 김현석
법규면 법규, 절차면 절차, 영어면 영어. 9급 공무원으로 있기에는 아까운 능력을 가진 이제훈은 구청에 새로 전입온 공무원이다. 한편 기존의 공무원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기까지 한 도꺠비 할머니 나문희는 그가 지내는 시장의 이웃들까지 모두 겁내고 꺼릴 정도로 일상의 사소한 문제까지 모두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여 업무를 마비시키는 할머니이다. 절차와 매뉴얼을 강조하여 방어하여 보려던 이제훈도 나문희의 물량 공세에는 당해내지 못한다. 나문희는 어떤 이유로 이런 민원을 제기하는 것일까. 늙은이의 심술이나 주책일까.
한편 나문희는 이제훈이 영어에 능통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제훈에게 영어를 배우고자 한다. 자신과 소중한 동생 둘 밖에 모르는 이제훈은 나문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을 리 없다. 할머니치고는 낯설게도 영어로 대화를 유창하게 주고받는 친구 손숙이 부러워서였을까.
그 마음의 내용과 동기가 어떠한 것인지는 영화의 자세한 전개에 따라 천천히 소개되는데, 영화의 제목이 그에 대한 스포가 되지 아니하는 범위 내의 힌트가 된다. 민원의 제기도, 영어도 나문희가 가진 어떤 생각과 마음을 표출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언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소통의 도구이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 평등에 지나지 않아 각자가 가진 언어의 무게는 천차만별이다. 언어라는 도구를 습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그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이 달리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시장의 진상 할머니인 나문희가 '아이 캔 스피크'라고 말하기에는 일정한 서사가 요구되는 것이다.
언어에 의한 소통은 청자와 화자가 요구되는 바, 대체로 화자의 언어가 힘을 갖지 못하는 것은 청자의 부존재 때문이다. 엄기호가 '들릴 권리'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누군가 듣지 않으면 언어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따라서 9급이긴 해도 상급자들과 시민들을 설득할 능력이 있고, 영어에 능통하면서도,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인 이제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미국하원의회 청문회와의 중간자로서 나문희의 언어가 언어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청자인 것이다. 따라서 이제훈은 나문희의 연기가 빛을 발하게 하는 좋은 상대 배우이면서도 단순한 서브에 그칠 수는 없는 핵심 역할이 된다.
이제훈의 존재는 우리로 하여금, 들을 의무에 관하여 고찰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재판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이 법조인의 불성실을 이야기하고 민원인들이 공무원의 나태함을 토로하는 것은 그들의 무능에 대한 비난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언어가 들릴 권리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일한 언어에 대하여 권위의 무게에 따라 언어의 무게도 달라지는 현실도 물론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그러한 현실태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서는 권위의 소유자는 언어에 대하여서도 일정한 책임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언어는 권위자에게만 의미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가장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는 장면은 나문희의 절친한 친구 염혜란과의 대화이다. 언어가 가진 여러 가지 기능 중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주기능에는 권위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시장의 작은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염혜란은 나문희의 속마음을 터놓을 수는 없는 존재일까. 나문희가 계속해서 되내이듯이, 시장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잔소리, 수다와 같이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고 해소하는 것도 언어를 빌린다. 그 또한 언어의 보조적 기능에 그친다고 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권위보다는 친분이나 공감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나문희가 그토록 찾던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다른 언어 또한 그에게 필요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염혜란은 나문희에게 언어의 다른 측면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의 마음을 뚫고 들어간다. 그리고 이는 함께 이를 지켜보는 관객의 눈물도 아낌없이 뺏는다.
이제훈의 동생처럼 차분히 그 언어를 들어주기에는 우리의 삶도 척박하다. 영화에는 나문희의 말을 방해하는 여러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부딪치는 자들, 잘 정돈되지 않거나 절차에 따르지 않은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 그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기회가 없었던 자들 등등.
영화에서 이제훈이 그랬듯이 언어가 들릴 만한 언어가 될 수 있도록 중재해주는 중간자의 역할은 갈 수록 요구될 것이다. 법리와 상관없이 흩어진 사실관계를 법리의 틀에 맞게 정리하는 변호사의 역할을 맡은 이상, 나 또한 그 중간자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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