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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 - ![]() 우르술라 누버 지음, 김하락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
자신조차 이해하기 힘든 무의식적 습관, 행동, 감정, 증상 등이 불쑥 튀어나와 인생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 대한 대중서가 넘치리만큼 시중에 널리 퍼져있는 만큼 무의식과 트라우마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 해보는 건 결코 낯설지도 어렵지도 않다. 우르술라 누버의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는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관계가 현재의 내게 미치는 영향과 그에 대한 반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의 부모는 하나의 세계이다. 자궁 속의 태아가 자신의 전적인 것을 모친에게 내어맡기듯이, 탯줄이 분리된 이후에도 당분간은 세상과 자신, 부모와 세상, 부모와 자신을 분리시켜 사고할 줄 모른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분리된 이후에도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부모와의 관계는 한 사람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세간에 횡행하는 공포처럼 어린 시절의 경험이 향후의 인생을 전부 좌우한다거나, 그 어떤 트라우마도 통제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은 허황된 생각에 불과하다. 어린 시절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자식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향후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모두 고정변수이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할 것을 요구한다. 고정변수 이외의 것, 즉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인생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을 통제하여야 한다고 본다. 인생이 책이라면 과거의 이야기는 남들이 이미 써놓은 것이라서 바꿀 수 없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자신이 직접 써내려가야 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후의 이야기조차 과거의 이야기에 따라 흘러내려가도록 방치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인생의 저자가 아니라 쓰여진 대로 연기하는 배우에 불과하다는 비유처럼, 과거의 경험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길 작가는 권고한다.
적극적 대응은 과거의 경험에 대한 재해석을 의미한다. 때로는 기억이 왜곡되고, 현재의 자아상이 과거의 경험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신념체계에 의하여 우리의 기억은 해석되어 있다. 신념 체계에 의한 해석을 배제하고 우리 나름의 적극적인 해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해석의 과정에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과정은 용서이다. 저자는 용서를 상대에 대한 면책으로 보기보다는 용서 주체의 수용, 수인 등으로 본다.
이 책이 독일에서 인기를 얻었다는 사실은 이러한 고민들이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것이라는 느낌을 줘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위로가 되는 것 같다. 아래는 짐바르도의 인용문으로, 책의 큰 줄기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아 옮겨본다.
"누구나 과거의 영향을 받지만 과거가 전적으로 어떤 사람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과거의 사건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사건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 현재의 해석과 과거를 구별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변화에 대한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관점은 바꿀 수 있다. 틀을 바꾸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틀을 바꾸면 전체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 필립 짐바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