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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7 Europe+Russia

여유로운 항구 도시 코페르 02.07.-02.08.

원래의 계획은 베니스에서 크로아티아의 해안 도시로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었으나, 겨울에는 배가 뜨지 않아서 기차로 이동한 것이다. 차 편이 있으면서도 적당해 보이는 도시로 코페르를 골랐지만, 사실 코페르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전혀 없었다. 




트리에스테에서 코페르로는 버스로 이동했다. 동양인이 낯선지 버스에 있는 사람들은 유난히 쳐다보곤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면서 이동했다. 여러 도시에 서는 차였는데 코페르에 설 때 잘 내렸다. 도착할 때는 이제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숙소로는 지도를 보면서 걸어갔다. 도시에 대한 인상이 좋았던 것은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늘이 아름다웠고, 기온이 적당한 편안한 날씨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횡단보도 앞에 설 때마다 자동차들이 하나같이 저 멀리서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그 운전자가 유난히 친절한가 해서 빨리 뛰어서 건너곤 했는데 지켜보니 보행자 우선이란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었다. 신호등을 많이 보지 못했는데 보행자 우선의 원칙이 신호등보다 더 철저히 보행자를 보호하면서도 교통을 원할하게 하고 있었다. 물론 차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겠지만 대단해보였다.





숙소는 호스텔 뮤지엄이란 곳으로 예약했다. 정류장에서 한참을 캐리어를 끌고 걸어갔다. 가는 길에 본 해안가가 평화롭고 사람들의 발걸음에 여유가 있어서 좋았다. 옷차림은 조금 더 촌스러워졌고 눈빛은 조금 더 낯선 이를 살피고 있었지만 동네는 안정되어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알기까지는 내 쪽에서도 경계를 하느라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의 숙소 리셉션은 바였다. 자갈로 된 길을 힘들게 올라갔는데, 들어가는 길까지 사람들이 우리를 경계하는듯 했다. 그러나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반겨주는 모녀는 영어를 능숙하게 할 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우리를 환영하는듯 했다. 다시 코페르를 찾더라도 여기 묵고 싶을 정도로 기분좋은 느낌이었다. 



숙소에는 침대가 세 개나 있어서 여유롭게 사용했다. 천장에는 선풍기가 돌아갔고 공용 화장실은 두 개 있었다. 와이파이도 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짐만 풀고 밖으로 나왔다.




트립어드바이저로 식당을 검색하면서 다녔다. 뒷 길로 한 바퀴를 돌면서 해안가를 향해 걸어갔다.


해안가에는 산책 나온 사람이 많았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부든, 운동복을 입은 커플이든, 가족 단위로 다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보기 좋았다.



밤이 되자 쌀쌀해졌기 때문에 오래 걸을 수는 없어 길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갔다. SARAJ는 슬로베니아라는 낯선 나라에 다시 올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으니 전통 음식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고른 가게인데, 사실 전통인지 어쩐지 알아볼 수도 없었다. 들어가니 손님은 많지 않았고 양복을 입은 웨이터가 우리를 맞이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고, 영어메뉴를 달라고 했더니 주긴 하는데 우리가 정한 메뉴가 자기네 나라 말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서 대충 양고기로 된 걸 시켰다. 



고기는 매우 내 스타일로 마음에 들었다. 뼈에서 쉽게 분리되는 양고기는 부드럽고 맛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 어떤 대단한 요리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통째로 삶고 그 옆에 풀 몇 개를 놔둔 것이었다. 고기국도 마찬가지로, 고기를 푹 삶고 그 옆에 야채를 몇 개 썰어넣었다. 나는 이 음식을 선택한 것이 내게 좋은 가르침을 줬다고 생각한다. 고기가 모자라지 않아서 행복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먹다가 배가 찢어질 뻔했다.




#문화의 요소로서의 요리


음식을 생존 수단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맛을 즐기기는커녕 배마 고프지 않은 정도로만 살아가는 내게, 요리를 먹는 것은 특별한 즐거움이 아니다. 따라서 여행에서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도 내겐 즐거움을 크게 주지 못한다. 그나마 곰, 순록처럼 평소 먹어보지 못할 음식을 여행중에 먹어보는 등의 '경험으로서의 요리' 정도를 고려할 뿐 어떤 음식을 먹는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코페르에서 먹던 양고기는 문득, 요리를 통해 그 문화를 읽을 여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요리는 단지 그 나라의 자연적 풍토가 어떠하고 자연적 소산을 얼마나 누릴 수 있는지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 기질이나 문화적 발달 정도 등을 볼 수 있는 관찰의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의 양고기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양고기를 덩어리째 요리하여 내어놓는 것은 목축 혹은 사냥이 익숙하다는 의미이고, 그것이 서툴고 커다란 빵과 함께 놓여있을 때는 농업이 발달할 만큼 풍요롭고 비옥한 땅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아가 양념 등이 가미되지 않은 고기 덩어리를 선호하는 것은 고기를 저장할 필요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는 의미로 고기의 저장이 익숙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남성이 주도적인 사회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나아가 후식 등의 문화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것은 일상적으로 음식이 풍요로운 정도에는 이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음식문화를 발달시키지 않는 것은 단지 섬세함이 부족하거나 재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럴 만큼의 여유(정착의 안정성에 대한 의미이든 식재료의 양에 대한 의미이든)가 없을 여지가 많다. 그런 맥락에서 슬로베니아의 거칠고 투박한 요리는 슬라브족의 호전적이고 남성적인 기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위에 쓴 글은 사실 엉터리이다. 식당에서 우리가 접하는 요리가 어느 시대에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먹었고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인 요리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류가 많이 개입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해당 문화의 요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필요가 있다. 혹은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때 요리에 대한 가설이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면 좋은 자료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먹는 법은 배우지 못했지만 요리를 보는 법에 대한 씨앗 정도는 가져가는 것 같다. 


식사를 한 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은 이하와 같다.


슬로베니아의 작은 도시 코페르. 한적하고 여유로운 바람이 분다. 항구의 잔잔한 바다만큼 밤의 공기도 조용히 가라앉는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자연을 닮아 힘이 있지만 느리고 차분하여 보는 이의 마음을 풀어준다.

하지만 이 역시 슬라브 민족의 땅. 거대한 삶은 양고기는 한 덩이를 먹는 것도 숨이 막히는데 그걸 거대한 빵에 싸먹는다. 다채로운 양념이나 화려한 미관으로 승부하지 않는 그야말로 고기덩어리. 사내감성을 자극하는 덩어리에 전사의 음식은 이랬으리라 생각하며 서영은의 소설 하나가 떠오르는 순간 연약한 포크가 끝내 이겨내지 못하였다.



식당에서 나와 주변에 있는 카페 겸 바로 갔다. 상당히 쌀쌀한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체가 열린 테라스였다. 테이블마다 옆에 난로가 있어서 무릎담요를 덮고 난로에 바싹 붙어 앉았다. 조금만 더 따뜻한 날씨였다면 평온하고 여유로운 코페르의 밤을 더 낭만있게 즐겼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주 진한 핫초코를 마셨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배가 꽉 찬 느낌이어서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마셨다.




 




다음 날 피란에 가기 위해 숙소에 짐을 맡기고 체크아웃을 하려고 했는데 온 마을이 holiday라서 우리의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이 때는 다들 놀러간다길래 휴가기간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슬로베니아의 시인 프레셰렌이 사망한 날이 1849년 2월 8일이어서 공휴일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다행히 숙소의 주인이 우리를 배려해줘서 방에 짐을 두고 놀러갈 수 있었다. 피란에 가는 버스가 오기까지 시간이 조금 있어서 마지막으로 코페르의 바다를 구경했다.





매일 이런 바다를 보고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서울에 이사오기 전에는 집에서 바다가 보이는 것이 익숙했고, 이사와서는 한강을 보는 것이 익숙했다. 물 흐르는 것을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은 내게도 지중해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부러운 일이었다. 




찬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경우들이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파도 위로 느릿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왠지 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곤 했다. 게다가 물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맑아서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 일을 잊기에 좋았다.





청소년 시절에도 이런 그림을 매일 보고 있으면 좋을 거란 생각을 하는데 마침 10대처럼 보이는 애들이 몰려와서 바다 앞에 앉아있었다.






버스를 반대편에서 잘못 기다리느라 몇 대 놓치기도 했지만 무사히 피란을 향해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 국민성


흔히 국민성이란 표현을 사용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별로 선호하지 않는 말이다.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을 개개인의 의지와 노력이란 결론으로 귀결시키기에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이 무질서한 이유를 국민성에서 찾으면 각자의 시민의식 개선이 해결책이 될 것이고, 경제발전의 원인을 국민성에서 찾으면 경제위기도 개인들의 나태에서 원인을 찾게 될 것이다.

나는 에리히 프롬을 좋아하는 만큼 간접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겠지만, 유물론적 시각에 일응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비슷한 논의가 들어있다. 독일인의 국민성에 대한 평가가 시대마다 달라졌음은 국민성 논의에 대한 좋은 예증이 된다. 에리히 프롬이 주구장창 논의했던 사회적 성격 이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차원으로 돌려본다면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익숙함을 안다. 결혼 시장에서 사람이 살아온 성장배경과 그 집안, 부모의 경제력 등을 보는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보면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럽 여행 중 각 나라의 사람들의 느낌이 다를 때는 무엇 때문인지 고민해보곤 한다. 베로나나 슬로베니아의 도시들에서 사람들이 여유를 보이고 자동차가 멀리서도 설 수 있었던 것을 GDP와 별개로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다. 슬로베니아는 시장경제를 잘 받아들여 1인당 GDP는 2만 달러를 넘고 소련에서 이탈한 공산주의 출신 국가들 중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 사람들의 눈빛이 사나웠던 것은 크로캅의 하이킥에서 찾는 것보다는 치안, GDP, 성장동력 등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문제 해결의 차원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 큰 틀에서는 경제 체제의 변화가 인간 소외에 대한 대안이 된다고 생각하는 에리히 프롬처럼 접근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체제에 대한 논의는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논의이므로 개별 사안에서 영향을 미치는 물질적 배경과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사안의 이해와 해결에 많은 도움을 준다.

물론 기독교인이 유물론자인 것도 우스꽝스럽고 인간의 의지와 본능을 강조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생각도 내겐 충분히 공감가는 데다 唯라는 글자 자체가 지나치게 부담스러운 글자이기 떄문에 유물론자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사회의 정치구조나 경제체제, 물질적 배경 등이 사회적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행 중 그 나라 사람들이 주는 느낌이 내게 관찰의 대상이 된 배경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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