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랴나로 떠나는 박ㅇㅇ형을 보내고 한참 더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리예카로 바로 가는 차는 없었고, 트리에스테로 가서 다시 한 번 차를 갈아타야 했다.
리예카에서 갈아탄 차는 미니밴 같은 차였다. 차에는 나와 한 아줌마만 탔다. 밤길이었는데 가로등은 거의 없었다. 크로아티아는 유럽연합의 일원임에도 자기들만의 통화 쿠나를 썼다. 게다가 암스테르담 이후 국경에서 입국심사를 한 것도 크로아티아가 처음이었다. 국경에서 경찰들이 우리 차를 세워놓고 내 여권을 아주 꼼꼼하고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늦게 도착하는 만큼 터미널에서 가까운 숙소로 정했다. 영어가 잘 통해서 좋긴 했는데 결제는 쿠나로 해야 된다고 해서 신용카드를 썼다. 8인실 도미토리였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어서 혼자 편하게 방을 썼다
시간이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구경하고 싶어서 밖으로 나갔다. 나갔는데 사람도 별로 없고 거리가 휑한 데다 사람들의 눈빛은 사나운 편이어서 잔뜩 경계를 하게 됐다. 물론 커다란 동양인이 여기 나타났으니 그들도 덩달아 긴장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바다 쪽으로 걸어갔는데 가로등도 많지 않고 술집들도 깨끗하고 정갈한 느낌이 아니라 퇴폐적인 느낌이어서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 내가 본 리예카에서는 역 주변이 제일 별로였는데 도착하자마자 본 곳이 역이니 그 뒤로 인상이 좋기 어려웠던 것 같다.
저녁을 못 먹어서 맥도날드에 들러 간단한 걸 하나 사먹었다. 메뉴가 크로아티아 말로 되어 있어서 그냥 그대로 읽었는데, 내가 주문하는 순간 가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돌아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담배를 물면서 나한테 라이터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물론 없다고 대답했는데 그 대화는 서로 아주 빠른 걸음으로 스쳐지나가면서 한 거라 아저씨의 쿨함이 인상적이었다.
잔뜩 경계한 채로 자고 일어나서 창밖을 봤더니 느낌이 사뭇 달랐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볼 수 있는 걸 최대한 빠르게 많이 보고 이 도시를 떠나기로 했다.
출근 시간이었는지 어제 밤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발걸음이 유독 빠른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도에 나오는 것들 중에 별로 보고 싶은 것이 많지 않아서 빠르게 언덕 위로 올라가서 시내를 조망해보기로 했다.
아침부터 밥도 안 먹고 뛰어서 올라가려니 숨이 찼다.
시내 도랑인데 색이 좋다. 이런 물들이 모여 지중해의 초록빛 물을 이뤄내는 것일 거라 생각했다.
올라가는 길에 점점 다른 풍경이 보인다. 흔히 크로아티아에 사람들이 놀러가면 보는 정도의 색깔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꽤 볼 만하겠다 싶었다.
요새를 향해 올라갔는데 올라가니 교회가 나왔다. 물론 들어가볼 시간은 없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시간이 부족할까봐 미친듯이 뛰었다.
내려오는 길에 한번 교통사고가 날 뻔 했다. 리예카 사람들은 운전할 떄 딱히 보행자를 배려하는 느낌이 없었고 대단히 급하게 운전했다. 내가 횡단보도를 조심스럽게 건널 때 2차선의 차가 섰길래 건너고 있는데 1차선으로 차 하나가 미친듯이 들어와서 서로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사고가 날 뻔 했다.
무슨 축제라도 했는지 거리에 저런 줄들이 마구 걸려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시간은 없지만 빵 하나를 사먹었다.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할머니에 가까운 아줌마임에도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걸 보고 놀랐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빠르게 챙겨서 버스 터미널로 뛰어가 10분도 남지 않은 버스표를 예매하고 음료수까지 사서 차를 탔다. 이번에는 다행히 미니밴은 아니었다. 이 모든 일정이 일어난 시간으로부터 1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니 얼마나 바빴는지 알 수 있다.
(가는 길에 본 석회암 지대. 푸른 물의 이유일 것)
가는 길에 보이는 해변들은 아주 예뻤다. 사실 리예카는 해변 때문에 오는 도시인데 해변들이 도시로부터 멀어서 굳이 가긴 어려웠는데 막상 보니까 멋있고 좋더라는 생각을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렇게 올렸더라.
아름다운 해변들이 있는 크로아티아의 리예카. 오늘 하루 도시 3개를 다닐 예정이라 애석하게도 시간이 없어서 해변은 포기했다. 밤에는 사람들도 사나워보이고 거리도 퇴폐적이라 비호감이었던 도시가 햇살이 비치자 그나마 볼 만하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동안, 산도 오르고 유적지도 다니고 아침도 사먹고 포켓몬도 잡고 교통사고도 날 뻔 하고 눈싸움도 여기저기 하는 살인일정 끝에 버스에 올랐다. 떠나는 길 버스의 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기다림을 알지 못할 것처럼 보이던 성미 급한 리예카 사람들보다 내 발걸음이 더 급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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