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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17 Europe+Russia

로마가 묻은, 풀라 02.09.

리예카에서 풀라로 이동했다. 풀라로 가는 길에 검색을 해보긴 했지만 딱히 풀라에 뭘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터미널에서 내려 지도상 뭐라도 뜨는 곳으로 일단 걷기로 했다. 어쨌든 크로아티안데 바다만 보면 된다 싶었다.





가는 길에 본 아레나다.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는 없었는데 대단히 잘 보존된 느낌은 아니다. 게임 문명을 하다 보면 문화와 관련된 건축물을 세우면 문화 점수가 올라가곤 한다. 도시에 이런 아레나가 하나 있다는 것은 시민들의 문화적 역량에 대단한 기여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고대 로마의 흔적일 텐데 역시 위치가 중요하다. 

경기장 안에서 내 쪽을 바라보면 아치 틈 사이로 바다를 볼 수 있는 모양이다.





헤라클레스 문이니 쌍둥이 문이니 하는데 딱히 의미를 찾진 못했다.









세르게이 아치. 저 안으로 들어가면 그나마 식당도 많고 사람도 많다.









카페인지 바인지 제임스 조이스가 있었다. 너무 뜬금없어서 찾아보니 제임스 조이스가 풀라에도 머물러 산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가게와의 연관성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들렀다. 

밥이나 먹을까 하고 들어갔는데 딱히 먹을 만한 건 없어 보였고, 대낮인데 안은 어두컴컴하고 술집 분위기를 물씬 냈다. 딱히 내가 있을 곳은 아닌데 느낌은 한 번 내고 가야 되니까 커피만 한 잔 마셨다. 왠진 모르겠지만 앉을 자리 없이 사람이 많았다. 나중에 제임스 조이스를 혹시나 좋아하게 된다면 이 날을 기억하겠지



당시에는 뭔지 모르고 봤는데 검색해보니 아우구스투스 신전이다. 다른 사람 블로그에 있는 사진에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간 땐 확실히 비수기인지 사람은커녕 의미있는 건물인지도 몰랐다.



왜 이런 식으로 관리하는지는..




가는 길에 쓰레기통이 보였다. 이건 슬로베니아랑 비슷한 시스템인 것 같은데 카드를 찍고 쓰레기를 버리면 지하에서 쓰레기를 관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님말고




신호등 옆에 서있을 때 초록불이 될 때쯤 소리로 알려주는 건 좋다.






둘러보는 길에 바다가 시원찮았다. 사실 풀라의 바다를 즐기려면 항구쪽보다는 해변 쪽을 찾아야 되는데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럴 마음도 딱히 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가는 길에 잠깐 바다 가까이만 슬쩍 갔다왔다. 풀라에서 시간을 두고 바다를 구경한다면, 워터스포츠도 즐기고! 일몰도 보고! 돌고래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다음에 크로아티아를 올 기회가 있어도 풀라가 아니라 두브로니크나 갈 것 같아서 내게 무의미하지만.









그냥 가기 아쉬우니까 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캐리어를 들고 다니고 있었으므로 이미 몸에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지만 언덕길을 올라가면 풀라 해변을 내려다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올라갔다. 물론 못 봤다. 가게 안에 들어갔는데 놀라울 만큼 안 반겨줘서 당황했다. 일단 자리를 잡고 앉아도 메뉴판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인종차별인가 하고 봤더니 내 앞에 있던 서양인 여자애들이 화가 잔뜩 난 채로 주스만 두 개 시켜놓고 그것도 안 마시고 돈만 내고 나갔다. 이건 인종이고 뭐고 그냥 불친절하다는 걸 깨닫고 안심?했다. 끈질기게 아이컨택을 시도하여 주문을 했는데 보이는 대로 느끼했지만 잘 먹었다. 가끔 생각나는 맛이다. 물론 불친절하니까 다시 갈 생각은 없다. 




풀라의 기차역에는 낭만이 있었다. 잠깐 앉아 있었더니 괴기하게 색칠이 된 기차가 왔다. 중고등학생들로 보이는데 10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기차에 앉아 시끄럽게 떠들었다. 다행히 그 놈들 옆 자리에 앉지는 않아서 불편할 건 없었고 다만 구경거리가 조금 되었을 뿐이다.




가는 길에 기차를 한 번 갈아타면서 여권 검사를 했다. 다음 기차가 왔는데 여권을 빨리 안 돌려줘서 내가 발 동동 구르면서 재촉했다.



열차를 타고 가다가 아마 국경을 넘을 때 그런 것이겠지만 다시 한 번 여권 검사를 했다. 한참을 차를 세워놨는데 나 때문에 기차를 세운다는 게 신기한 일이었다. 읽고 있는 책 제목이 괜스레 조심스러워져서 손으로 가만히 가리곤 했다. 어디로 출국할 거냐는 말에 이르쿠츠크라고 했는데 아무 문제 없었던 걸 보면 리턴 티켓 끊는다고 난리친 건 아주 그냥 해프닝..




# 유럽의 변방 크로아티아


이전의 여행에서부터 이어진 생각이지만, 유럽을 여행하면서 계속해서 느끼는 것은 문화의 힘이다. 크로아티아의 많은 집들이 자연과 어우러지는 빨간 지붕의 예쁜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혹은 베니스의 건물들이 물 위에 굳건히 서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 이들은 어떻게 이런 모양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어떻게 자연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이어진 것이다.

크로아티아는 지중해를 접하고 있어 독자적으로도 해상무역이 발달하였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리스와 로마 문화권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크로아티아의 크고 작은 도시에 있는 많은 건물들은 그 영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현재도 남아 우리로 하여금 유럽의 냄새를 크로아티아에서 맡을 수 있게 한다.

특정 문화권에 속하여 그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건축, 예술 등 일반적으로 문화라고 표현하는 요소들 뿐만 아니라 정치 체제, 경제 구조 등에도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나아가 개개인의 사회적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화의 영향은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급한 개별적인 요소들이 나라 대 나라로 이동하는 것보다 큰 힘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문화적 영향이 반드시 개별 요소들의 발전과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산권 국가나 신흥 자본주의 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경우로, 기존의 전통 문화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발전을 시도하여 문화와 체제가 절연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상실하는 사회적 유익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크다는 것이 내 견해이다.

중국을 경유하면서 중국의 건축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낀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중국의 문화는 세계 그 어떤 문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것이고 그 역사 또한 짧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과거와의 절연에 기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보존이란, 과거의 유물을 무사히 훼손으로부터 보호해내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의 연결을 유지해내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경제적 가치를 성취해내는 것일 수도 있고 유지와 보수에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시화해내는 데에 그 의의가 있을 것 같다.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접하고 연구하니 르네상스가 터져나왔던 것처럼 문화가 유의미한 성취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그 관계에 대한 심도있는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문화에 대한 생각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여행 중 얻은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