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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 엄기호 지음/푸른숲 |
삶에 허덕이는 청춘에 대하여, 한편에서는 배가 불러 노력도 하지 않고 기대만 높은 세대로 이해하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자신의 사익 추구에만 급급하여 공익에 대한 이해나 정의에 대한 열정이 없는 이기적인 세대로 이해하는 현실에 대하여 엄기호는 이 책을 통하여 연대하고 있다. 위로를 가장한 잡설이 출판가에 넘쳐나는 현실에 비추어 더욱 반갑다.
저자의 접근은 '겉도는 삶, 헛도는 언어'라는 화두에서 출발한다. 우리 세대 나름의 고충과 현실에 대한 우리 세대 나름의 대응 방식이 단지 객체화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우리 나름의 언어가 없고, 들으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그 언어가 도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인식에 기초한다. 그래서 20대를 평가와 서술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그들의 언어를 담고 있다. 학생들의 언어로 수업을 구성하는 조한혜정이나, 최근 페미니즘 서가에서 언어에 관한 논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오른다.
20대의 언어로 담아내는 것은 학력 사회, 열린 교육, 열정, 정치, 사랑, 경제 등의 테마들이다. 거창하고 현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20대가 자신의 삶으로 만나는 세상을 자신들의 언어로 나름대로 구성해보고 있다. 거기에 저자는 그 나름의 신선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그들의 특수한 경험을 보편으로 이끌어내는 '선생'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정제되고 이론화된 논의에만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방식의 서술은 낯설거나 무가치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추상은 구체가 전제라는 내 관점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반갑다. 내용보다 반가운 것은 방법론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래의 글이 이 책에 담겨있다. 그 영향을 받은 몇 줄의 문장이 내 로스쿨 자기소개서에 담겼다. 변호사가 된 지금도 그 때의 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겠다.
나는 이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을 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말할 권리 뿐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들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영어에는 '말할 권리'에 대한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말할 권리라고 하면 쉽게 'the right to speak'를 떠올린다. 그러나 영어에는 다른 표현이 하나 더 있따. 'the right to be heard', 들릴 권리이다. 혼자서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가 소리지르는 것을 권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리가 권리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때 비로소 나의 말할 권리는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는 말을 하는 나의 용기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의 '듣는 의무'를 요청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려야 한다는 것은 이들의 거칠고 정리되지 않고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우리가 진지하고 꼼꼼하게 듣는 훈련이 되어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우리는 매끈한 목소리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매끈한 목소리로 깔끔하게 세상이 어떻다고, 이들이 어떻다고 정리해서 말해주기를 바란다. 이 감수성이 매우 큰 문제이다. 이러한 감수성으로는 늘 우리의 대변자, 혹은 그들의 대표자만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길고, 반복되고, 우물거리고, 때로는 모순되거나 비약인 이야기를 참지 못한다. 누군가 이야기의 핵심과 요점만을 '빨리 빨리' 이야기해주기를 바란다. 이런 감수성으로는 절대 '그들'을 이해할 수도, '그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언어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말할 권리'는 있지만 '들릴 권리'가 없는 셈이다. '그들'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문에서 말한 '헛돌고 겉도는 언어'가 만들어지는 전형적인 방식이 바로 이러한 감수성에서 기인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p.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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