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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책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 10점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열린책들

 

 

추상적인 사고는 인간이 가진 놀라운 재주 중 하나이다. 이성이라는 도구로 진리를 탐색하고 세상을 파악하는 데 익숙해질 무렵,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자신의 손과 발로 세상을 겪고 파악해내던 먼 옛날의 인류가 보여줬던 용기, 열정, 모험심, 야성 같은 것들. 이성에 대한 맹신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라는 반성의 계기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어쩌면 그 없이도 우리는 회의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현대인에게도 같은 질문은 여전히 주어진다. 질문은 특히 말과 글로만 세상을 파악해온 식자들에게는 더욱 강렬히 다가온다. 식자가 되기에는 미숙한 학생에게도 같은 기분은 엄습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니체를 찾고 사르트르, 카뮈에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조르바는 그 질문에 대한 카잔차키스의 답변이 사람으로 화한 것 같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젠가 만났을 것 같고, 언젠간 만나고 싶은 조르바다. 그가 보여주는 뜨거운 성정은 한편으로는 야만적이고 난폭해보이지만, 화자에게 그러하듯이 궁극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우리의 삶에 대한 회의를 동시에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조르바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의 가슴을 때리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왜요! 왜요!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화자는 삶에 대하여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지식인처럼 보이지만, 조르바에 대하여 그토록 감응하고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르바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르바가 그와 함께 크레타 섬으로 떠났는지도 모른다. 화자와 조르바 중 누가 더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조르바는 분명한 파장을 가슴에 남긴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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