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 ![]() 엄기호 지음/웅진지식하우스 |
우리의 삶이 어딘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다면, 사회의 응답에도 묘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청춘에 대한 위로 혹은 꾸짖음. 애정을 빙자한 몰이해를 마주할 때 우리는 그 분노를 자학의 에너지로 쓸 수 밖에 없었다.
그에 대한 엄기호 식의 답변이 담겨 있다. 우리의 삶이 어떻게 모욕당하고 있고, 어떻게 제한당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경험과 이야기들을 통하여 보편적인 시류를 진단한다. 위로를 목적하지는 않지만 그 와중에 위로의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세심한 관찰자인 엄기호 특유의 애정어린 시선 때문이다.
언어의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그는 이 책을 통하여 몇 가지 언어를 '제공'한다. 어떤 언어를 가지느냐에 따라 삶을 인지하고 다시 표출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책에서 제시한 언어는 기대와 희망, 힘과 용기, 경험과 체험, 분노와 격노, 공감과 동감 등이 있다.
기대는 오늘을 충실히 살면 곧 다가올 미래에 열매가 주어진다고 바라보는 살ㅁ의 태도다. 희망은 다르다. 사회가 그어놓은 선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며 불가능을 꿈꾸는 것이 희망이다.
힘은 자유의 원천이다. 힘이 있을 때 현재에 충실하며 제 기분대로 살아갈 수 있다. 용기는 힘에 맞선 힘이다. 남을 파괴하는 힘이 아니라 내 삶을 체념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을 힘이다.
삶에서 부딪치는 우연과 위험에 나를 열어둘 때 우리는 진짜 경험을 할 수 있다.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는 삶은 시간을 소비하는 체험일 뿐이다.
분노는 통제할 수 있는 감정이다. 분노에는 원인을 찾고 따지며 생각할 여지가 있다. 격노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다. 원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풀어버리면 그만이다.
거지를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 적선하고 싶은 마음이 동감이다. 공감은 거지에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이 아니라 그와 내가 서로 다르지 않은 운명임을 직감하는 마음이다.
동료, 희망, 용기와 같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언어들을 삶의 동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건 확실히 엄기호의 재능이다.
휴학하고 울산에서 지낼 때 울산대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고 공부하며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학교에 엄기호 특강이 있어 반가워서 들으러 갔던 기억이 난다. 나는 내 삶의 속도를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인상을 오래도록 받아왔기 때문에다비드상, 체험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두더지에 대한 이야기는 왠지 제규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 날 사람들의 Q&A가 내 휴학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게 한 계기이기도 하다는 건 여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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