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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 ![]() 권석천 지음/창비 |
미국의 유명한 대법관들의 개인적인 성품, 판결의 태도, 정치적 지향 등은 법학과 아무 상관없이 사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얼핏 들어봄직하다. 예컨대 올리버 홈즈가 위대한 반대자이든 말든 우리와 시공간을 달리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귀에는 그의 이야기가 스친다.
반면 우리의 대법원은 유난히 낯설다. 쏟아내는 판결례들에 대하여, 마치 정치가 어떠네 대통령이 어떠네 하는 맥락으로 대법원에 대한 손쉬운 비난은 언제든지 쏟아낼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판사들의 성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은 단지 우리가 대법원에 대하여 무관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법적 안정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면서 '오직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의하여서만 재판하는 것이 판사라고 보는 것이 지금까지의 실무 법사회학이다. 마치 검사동일체처럼 어떤 법관이 오더라도 같은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을 우리의 이상으로 삼아왔다. 그와중에 법관 개인의 성향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드러나서는 안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나 법관이 정치적 지향이나 종교적 편견 등에 의하여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실제로 그러하다는 믿음은 오히려 분석과 해석을 방해한다. 이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실감할 수 없는 법관의 완벽한 중립과 객관성이라는 허상의 도그마가 오히려 그에 대한 견제의 걸림돌이 된다.
그런 맥락에서 반가운 책이다. 대법관 개개인이 아니라 이용훈 코트라고 명명한 대법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법개혁과 소수자 보호라는 화두를 어떻게 법원 내에 가져왔는지 그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대법원 내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에, 이용훈 코트에 대한 맥락을 모두 제외하고 보더라도 대법원에 친숙해질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제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양승태 코트를 전제로 한다. 구성원의 다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판결이 보수적이었다는 비판을 받는 현재의 대법원에 대하여 비판적 기준으로서 이용훈 코트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반대의견 5인의 중요함을 역설한다. 그것이 꼭 다수의견을 압도하거나 결론을 뒤바꾸지는 못할지언정 묵살당하지 않는 소수로서 논쟁을 가능하게 하고 논리를 더 첨예하게 만들어줌으로써 논의를 풍부하게 한다는 로크스러운 주장이다.
이에 대하여 당시의 대법관이었던 사람들 중 각 진영에 있던 두 대법관에게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보수로 분류되던 분은 법관에게 실력차이가 있을 뿐 다양성은 문제되지 않는다고 답변했고, 진보로 분류되던 분은 다양성의 확보는 매우 의미있다고 답변했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판사들이 몽테스키외의 주장대로 법률을 기계적으로 집행만 하지 못하는 것은 입법의 미비와 부실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법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그리고 법원의 구조와 성향은 대법원이 쥐고 있다. 제왕적 대법원장이라는 비판이 들리는 이유이다. 다음 대법원장을 맞이하는 데 있어 진통을 겪는 이 시기에 우리의 대법원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이 책은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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